$ x-1=0 $
이란 이 등식은
방정식이다.
x값에 따라서 등식의 참과 거짓이 바뀌는 그런 방정식의 정의를 만족하는 등식으로써 방정식이 맞다.
그렇다면 그 방정식의 해는 무엇인가 하니
1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 x $값이 1이 되면
$ x-1=0 $
에서
$ x $가 1이니
$ 1-1=0 $
이 되어 등식은 참이 된다.
따라서 1은 이 방정식의 '해'가 된다.
방정식의 '해'는 쉽게 말하면 답과도 같은 것이다.
방정식의 해답!을 '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해'는 다른 말로 '근'이라고도 부른다.
방정식의 '해' 또는 '근'은 그 방정식이 참인 등식이 되도록 만드는 x값으로써 여러개일 수도 있고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해가 존재하는 방정식의 경우
그 해의 개수를 count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 방정식의 해는 몇 개이고, 각각은 무엇이에요~라고 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은 예외인 경우도 존재할 수 있겠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 또는 같이 떠들어보고 싶은 주제 하나가 있다.
여러분은 아까의 방정식
$ x-1=0 $
의 해가 1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어떠한 것을 느끼는가
보통 해가 1뿐만 존재한다는 사실에 그 1은 특별하다고 인식하게 된다.
아! '해'는 특수한 것이구나
뭔가 인간 본능 특성 상 특수한 것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성질때문인지, 우리는 1에 집중하게 된다.
1이 특수하니까.
왜냐하면 1만 그 답이 되고
나머지 2나 3, 혹은 5 6 과 같은
"모든 1이 아닌 숫자에 대해서는 방정식이 거짓이니까"
어느 리코더 하나가 주인없이 테이블 위에 놓여져있다.
당신은 당신 두 사람 중 한 명에게 리코더를 넘겨주어야한다.
A 리코더를 불 줄 알고, 리코더를 사랑하는사람
B 리코더와는 하등 관계없는 사람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A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러하다.
A B 누구에게 주어도 전혀 상관이 없다.
A를 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논리는 이럴 것이다.
B는 불 줄도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으니까 리코더의 "가치"가 높아지도록 A에게 건네야지!
근데 과연 리코더의
'가치'라는 건 누가 정했는가
리코더를 불어야만, 좋아해야만 그 리코더가 의미 있어진다는 건
사실 썩 수학적으로 행복한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수학적인 게 아니라 그냥 이 저자 개인적인 독특한 취향에 의한지도 모르겠다.
리코더가 B에게 건네어졌을 때 B가 어떻게 이를 활용할지는 모르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리코더를 불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이 리코더를 흉악한 무기로 사용해서
흉악범죄자들을 처단하는 것에 사용해
혹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될 수 있는 상황이 존재한다.
A에게도 그러한 일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사회적으로, 일반적으로, 관용적으로'라는 전제 하에는 A에게 건네어주는 것이 맞다.
그리고 나도 사회생활 할 때에는 당연히 A에게 건네어주는 일반인이다.
근데 수학같은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당신이라면 조금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는 자극을 감히 드려보고자 하는 것이다.
주제넘게도. 죄송합니다.
$ x-1=0 $
이라는 방정식에서 해가 1이라는 사실에 우리가 열광해야하는 이유는 사실 그 자체의 이유로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이유는 없다.
방정식의 해를 찾으라. 라는 말에 의해서 1에 속성이 부과된다하면 모를까
그리고 해를 찾으라고 해서 꼭 해를 찾아야 하는가?
그럴 필요는 없다.
당신들도 어머니께서 김치 먹으라 해도 김치 안 먹지 않았는가
우리는 순전히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해를 찾기로 마음먹었고
1이라는 숫자에 그 방정식에 대해 특수한 성질 또는 의미를 부여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2가 해가 아닌 이유, 또는 그 사실 자체에 집착하기로 마음먹으면
사용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항상 2도 1등숫자가 될 수 있고, 1도 그러한 가능성이 있다.
1이든 2이든 3이든 다 똑같은 숫자이다.
사실 다르다.
나의 생일은 2003년도 08월 13일이다.
생일을 챙기곤 한다.
생일. 특별하다 나도 좋아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열광하진 않는다.
1년의 기준을 다르게 잡거나, 하루가 몇시간이냐를 다르게 잡거나, 달의 공전속도가 달라졌다면, 언제나 다르게 설정되었을 수도 있는 나의 생일이니까.
물론 지금 이 모든 것들을 특수하게 받아들이고 감사한다면 나의 생일은 특수하고 행복한 숫자 날짜이고
지금도 그렇게 대외적으로 받아들이고 사회적으로 반응한다.
올해도 그렇게 생일을 보냈고,
그리고 이것은 나의 이성적인 영역이지, 감성적인 영역으로써는
생일축하를 못 받으면 기분이 꿀꿀해진다.
나는 군생활을 다음주 목요일에 마무리하는데,
군생활을 마무리하는 당일 날에는
전역식을 하고
선후임 동기들이 다같이 모여 사진을 찍고 일종의 축하행사와 같은 것을 한다.
전역이라 함은 군생활의 '끝'이다.
분명 특수하고 나의 마음도 그렇게 가리킨다.
하지만 그 축하행사에 누구든지 다 참여해야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서로가 살아있고 상황이 가능하다면 굳이 내 전역 축하행사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필요가 없다.
사실 좋아하겠지만 이것은 큰 필요가 없는 의미없는 비생산적 활동에 불과하다.
정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전역! 군생활 끝!이라는 사회적으로, 일반적으로, 관용적으로, 대외적으로, 가식적으로, 표면적으로, 상투적으로, 위선적으로 의미없는 자리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전역식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써
오히려 더 특별하지 않은 시시콜콜한 오히려 아쉬운 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전역식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냥 부조리에 불과하다.
라고 하면 너무 극단적이고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 하진 않겠다 ㅎㅎ
물...론!!
전역식 때 나도 조금 울컥하고 조금은 울 수도 있다.
나는 내 전역식이 특별하다고 느끼니까.
그럼 이 글은 무엇이느냐 하면
순전히 나의 이성적인 고찰로 생각을 적은 것이지
실제 내가 현장에서 느낄 바는,
방정식이든, 리코더 선물이든, 생일축하이든, 전역식이든
모두 감동적으로 느낄 나의 ENFP이다.
난 사실 이 글에서 비판한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방정식의 해 1을 끔찍히도 특수하게 느끼고
리코더도 한 치의 고민도 없이 A에게 건네줄 것이고
친구와의 생일축하도 화려하게 하고싶고
전역식 때엔 헹가래까지 하고싶다 ㅎㅎ
사실 다 의미 없다.
이 글을 다 읽었다면 다 까먹어보도록 하자.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인데
이렇게 고민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럼 다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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